처음 이 책을 내 메모장(읽을 책 목록)에 추가했던 것은, 어디선가 책 소개를 보았을 때였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기억은 잘 안나는데, 아무튼 주인공이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닮긴 책이라고 말했었던 것 같고

그 단순한 문장에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여자친구가 말해줘서 알게 된 것인데, 

고타마 싯다르타가 부처의 본명(?) 이라고 하더라. 고타마와 싯다르타는 각기 다른 인물로 소설에서 등장하지만, 결국 둘 다 완성자로 거듭난다. 아마도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 생애를 각색해서 소설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주변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완벽한 엄친아 같은 주인공임에도 어딘가 불만족을 느낀다. 주인공은 완전한 내면의 평화,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사문 생활을 하기도 하고, 완성자인 고타마의 가르침을 받다가도 그곳을 떠나 세속적인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완전한 꺠달음을 얻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처음에는 싯다르타의 대사나 생각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다가도, 점점 난해하고 와 닿지 않았다. 뭔가 시간의 무의미함, 세계의 단일성 따위의 말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걸 보면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싶은 것 같은데, 난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 이 책에서 헤르만 헤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비단 진리 뿐만 아니라 어떤 지식을 배울 때도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떤 개념을 이해한 사람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배우는 사람이 그것을 잘 곱씹고 스스로 그 과정을 되짚어보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또는 들으면서는 이해가 됐다고 착각하면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작 별 거 아닌 지식이나 개념도 저러한데, 진리는 그 정도가 얼마나 더할까. 스스로 사색하고 체험하지 않으면 진리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말로써 이것을 전달하려고 할 때, 말의 불완전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언급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종교에서 교리와 문자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말'로써 만들어놓은 것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처럼.


 

+ Recent posts